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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그래요:)/테드의 영화 이야기:)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명동백작'을 떠올리다.

by 느라파파 2012. 7. 16.

 # '명동백작'을 아시나요

 

 

8년 전쯤이었던가. EBS에 명동백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전쟁의 포화와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낭만과 로맨스가 넘쳐나던 1950년대의 명동, 그리고 그 속에서 청춘을 살다 간 우리의 문인들. 해설자인 정보석의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김수영, 박인환, 서정주 등의 문인들 뿐만 아니라 이정재, 이화룡 등 명동일대를 누비던 주먹들의 이야기까지 다루었던 명동백작. 


수능영역 중에서도 언어영역, 그 중에서도 현대문학을 가장 좋아했던 새내기 대학생 당시 김주원에게 이 드라마는 그 어떤 인기 드라마보다 값지고 의미있는 드라마였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무심코 이 명동백작이 생각났다. 아마도 이 영화 역시 20세기 초반을 살다 간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 '미드나잇 인 명동'은 안되려나.. 

 


이 영화의 컨셉은 마치 개그콘서트의 옛 코너 '그땐 그랬지'와 흡사하다. 약혼녀인 이네즈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난 소설가 길.  술에 취해 파리의 거리를 헤매던 길, 우연찮게도 그는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간다. 당대의 파리는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캇 피츠제럴드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들이 넘쳐나던 낭만의 도시였다. 마치 명동백작의 1950년대처럼.


길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얻기도 하고, 만인의 연인이었던 '애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길의 모습이 낭만의 도시 위로 펼쳐진다. 90년에 가까운 시간을 오가면서도 설정에 별 무리가 없었던 것은 그 만큼 파리가 과거를 잘 간직한 현재이기 때문이겠다.

 

 

미국의 명 영화감독인 우디 앨런이 제작한 이 영화는(그의 영화를 본건 처음인 것 같다), 저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두 가지, 재미있었다와 별로였다. 나는 전자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음에도 스캇 피츠제럴드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헤밍웨이 하면 작품이름만 겨우 생각나며, 화가들은 고갱을 제외하면 이름조차 모르겠음에도 말이다.  그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자유로움과 그들이 쏟아내는 낭만적인 대사들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등장하는 예술가의 작품들과 그들의 삶을 더 잘 알수록 더욱 공감이 가고 재미의 여지가 많을 영화이다. 트렌디하게 보면 다소 지루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학과 예술을 소중히 하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만약 예전의 명동백작과 같이 우리 문인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본다.

 

 

 # 과거는 현재의 미래다 

 

 

요즘 재단에서 <내 문학의 기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민영, 이호철, 현기영, 신경림, 박범신 등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작가가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밤마다 전하고 있다. 재단에서는 디지털 유산의 보존이라는 기치에 맞게 이 다섯 번의 강연 모두를 소리아카이브에 음성으로 보존할 계획이기도 하다.

 

현재 2회차까지 진행된 내 문학의 기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신경림, 박범신 두 작가에 비해 앞의 두 강연에 신청하고 참여한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나 조차도 준비를 하면서야 겨우 이 세 분을 알게 되었을 정도니, 참여자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일테다.

 

미당 서정주, 천상병 등 역사적인 시인들과의 일화를 들려주셨던 민영 시인. 황순원, 김동리 한국 현대 문학의 대표소설과들과의 교류를 풀어내셨던 소설가 이호철의 목소리에는 책 속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http://itcanus.net/97079#0

 

명동백작, 내 문학의 기원, 그리고 미드나잇 인 파리. 장르도 인물도 다르지만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향수와 추억, 눈물과 아픔을 간직한 문학과 예술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것. 그 과거를 소중히 기억할 때 오늘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공감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안다는 건 단지 지식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 뿌리 내리기 위한 곱씹는 노력을 내포하는 말일 게다. 어쩌면 스쳐가는 한편의 영화였을지도 모를 미드나잇 인 파리, 그 안에서 참 많은 걸 본 것 같다.

 

 

그나저나 파리, 가보고 싶네.
낭만적인, 감정에 충실한 그런 사랑 말야.
뭐 결과 아닌 기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 120715-

 


미드나잇 인 파리 (2012)

Midnight in Paris 
8.1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애드리언 브로디, 카를라 브루니
정보
코미디, 판타지, 로맨스/멜로 | 미국, 스페인 | 94 분 |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