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 2010
드디어, 21권을 끝으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다 읽었다. 양현이가 서희에게 해방의 소식을 전하는 최후의 그 벅찬 순간, 몸을 옥죄던 사슬이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는 묘사,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장연학의 모습까지. 해방을 맞이하는 마지막 권 마지막 장의 그 모습들에 나 역시 전율을 느꼈다. 스물 한권을 내리 훑어가며 느끼고 생각했던 짧은 감상을 적어본다. # 길고도 길었던, 특별한 인연 토지를 처음 읽기 시작한게 언제였더라. 아니 토지를 처음 접하게 된걸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최참판댁 식구들이 낯선 구천이를 의심하는 소설의 초반부,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선명히 등장하던 그 모습이 소설 토지와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다. 토지가 좀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건 집에서 재수의 나날을 보내던 2003년에 KBS 스카이 채널을 통해 방영되던 1987년의 토지를 통해서였다. 지금은 중년배우에 가까운 당시 배우들의 열연들이 아주 인상 깊었었다.
서희역의 최수지에서부터 이용 역의 임동진님, 그리고 김길상 역의 윤승원등,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의 모습과 배경이 상상되는건 2000년대가 넘어 SBS에서 방영된 토지가 아니라, 20년도 넘은 그 옛날의 토지였다. 재수하던 때의 내 현실이 답답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버전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토지를 소설로 손에 잡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건 작년 여름쯤 되는 것 같다. 조정래의 한강을 읽고 한동안 장편에 손을 대지 않다가, 김별아의 책인 "모욕의 메뉴얼을 준비하다"를 읽던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의 어드메 구절이었던가. 한국 문학의 큰 산으로서 토지는 꼭 읽어보아야 한다는 그녀의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 내심 토지의 스토리도 다 아는데 21권이나 되는 책을 굳이 다 읽을 필요가 읽을까 생각했던 내게 큰 자극이 되었던 듯 싶다. # 21권, 그 숨가쁜 기록과 역사의 흔적들 1년반에 가까운 시간동안 읽어오면서 때론 쉴새 없이 읽던 순간도 있었고, 좀 처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읽기를 한동안 멀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늘 정정하던 모습을 보여주시던 박경리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들이 TV에서 방영되었다.
소설을 쓰느라 한순간 한순간을 힘겹게 살아왔던 그녀의 순간들, 역사와 현실의 굴곡을 함께한 그녀의 삶이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속 그녀를 접하기 전까지는, 조정래의 소설에 비해 토지는 너무 투박(?)하다고나 할까? 전개가 길고 답답한 느껴졌음을 고백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기나긴 호흡들 하나하나에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고, 힘들었던 현대사가 담겨 있는 것인데.. 책을 그저 책으로만 받아들이려했던 내가 부끄럽다. 서희와 길상이, 용이와 월선이, 구천이 김강쇠, 송관수, 조병수, 한복이, 봉순이, 양현이, 작가를 빼어 닮은 모델이었던 상의 등등. 소설의 명장면들을, 중요 인물들을 손에 꼽고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테다. 우리내 현대사의 아프면서도 따뜻한 궤적을 그대로 담은 토지, 줄거리를 말하기 보다는 이 큰 줄기의 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번 겨울, 조정래문학관과 함께 소설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를 꼭 찾아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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