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겨울, 문형배 재판관님이 쓰신 <호의에 대하여>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싶었지만 너무나 인기가 많은 책인지라 예약을 기다리면 족히 몇 달이 걸릴 듯했다. 때마침 YES24 포인트와 쿠폰이 있어 주저 없이 구매를 선택. 역시 책 배송은 빠르고 좋다.
문형배 재판관이 저술한 《호의에 대하여》는 법조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 관계의 핵심적인 요소, 즉 '호의(好意)'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윤리적 딜레마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저서이다. 단순한 법률 해설집을 넘어, 법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삶 속의 선의와 악의, 책임과 무책임의 경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전문 법조인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법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무게를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이 던지는 주요 메시지와 나의 감상을 정리해 본다.
1. 호의의 민낯: 선의가 법적 책임으로 돌아올 때
책의 제목처럼, 가장 먼저 다루어지는 핵심 주제는 '호의로 시작된 행위가 어떻게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는가'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호의적 행위를 주고받는다. 친구에게 차를 태워주는 행위, 어려운 이웃의 짐을 들어주는 행위, 급한 부탁을 받고 잠시 물건을 보관해 주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보통 아무런 대가 없이,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문 재판관은 실제 판례들을 통해 이러한 호의가 예상치 못한 사고나 손해로 이어졌을 때 발생하는 복잡한 법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호의 동승' 사건이나 '무상 위탁' 사건 등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례이다. 누군가를 친절로 태워주었는데 사고가 났을 때, 법원은 단순히 '좋은 마음'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법은 피해자의 손해를 구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법의 냉정한 잣대와 인간의 윤리적 감정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법은 선의 자체를 처벌하지 않지만, 그 선의가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는 '과실(過失)'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독자는 법이 정의하는 '합리적 주의 의무'의 범위를 재확인하게 되고,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늘 인식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깨닫게 된다. 호의라는 인간적인 감정과 법적 책임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만나는 지점을 매우 현실적으로 조명한다.

2. 법조인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인간 존재의 복합성
문형배 재판관은 단순히 법률 조항이나 판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건의 이면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삶의 맥락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저자가 겪은 재판의 기록들은 흑백논리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인간사의 복잡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법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당사자들의 주장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절박함이 담겨 있다.
책에 등장하는 판례들은 법률가에게는 '판단의 근거'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삶의 전부'이다. 저자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법조인의 고뇌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특히 '호의'라는 주제가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와 경제적 약자의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힘든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도우려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법이 어떻게 정의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이는 법이 '결과'만을 따지는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도구'임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문 재판은 법의 해석과 적용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요구하는 고도의 인문학적 작업임을 보여준다. 법관의 판결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인식하며, 법적 정의를 구현하려는 저자의 진심 어린 자세가 글 전체에서 느껴진다.
3. 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윤리적 성찰을 촉구하다
《호의에 대하여》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법의 만능주의를 경계하고 법의 한계를 명확히 인정한 후, 그 빈 공간을 윤리와 공동체 의식으로 채워야 함을 역설하는 점이다. 법은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특히 호의와 같은 비물질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은 법의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법적 정의가 실현된 이후에도 남는 인간적 앙금과 상실감에 주목한다. 재판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호의가 깨진 관계는 결국 인간적인 신뢰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진정한 사회적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윤리적 성찰과 책임감 있는 행동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나의 호의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 경계를 넘어선 더 나은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타인을 향한 진정한 호의는 그 의도만큼이나 결과에 대한 책임 의식을 동반해야 하며, 법의 개입 이전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결국, 《호의에 대하여》는 법조인이 쓴 책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더 인간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촉구하는 깊이 있는 성찰서이다. 법과 윤리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저자의 바람이 담긴 역작이라 생각한다.
직업과 지식을 떠나, 오랜 기록과 관찰의 힘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와 지혜를 만들어 준다.
이제는 문형배 작가님이 더 어울리는 재판관님의 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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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문형배 | 김영사 - 예스24
문형배 재판관이 편견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작고 평범한 보통의 삶을 지키기 위해 배우고 성찰하며 기록한 120편의 글.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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